중시조 묘 정화사업 - 성금모금 안내 작성자:관리자  id:sobaek,  조회수:14953,  등록일:2011-07-19


중시조 묘 정화사업은 2009년8월14일  이사회 결의와 2011년3월25일 대의원총회의 의결을 거쳤고, 이의 효과적인 시행을 위하여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한 바 있읍니다. 이에 중시조 묘 정화사업의 개괄적인 내용과 성금모금에 관하여 안내드립니다.


 


- 사업의 목적 : 실전(失傳)된 것으로 알려졌던 중시조 묘를 확인 함에 따라 그 묘역을 정화하여 40만 전 종인의 구심점을 삼고 숭조와 종친화합으로 우리 백씨의 위상을 드높이고 자손번영의 토대를 마련하고 져 함


 


- 묘역위치 : 경상북도 예천군 유천면 고림리 212번지


 


- 1단계 정화사업 : 토지확보, 봉분정리, 묘비건립, 진입로 확보, 조경공사, 재북파조단비


 


- 정화사업예상 비용 : 26천여만원


 


- 기 확보액 : 164백만원


 


- 현단계의 모금금액 : 96백만 원


 


- 성금에 동참방법 : 1계좌 일만 원으로 하며 , 하고 싶은 계좌수를 결정하여 송금


 


- 입금은행 : 국민은행 365-25-003-399(수원백씨중앙종친회)


                 농협중앙회 301-0069-6230-91(수원백씨중앙종친회)


 


- 동참 종인에 대한 예우 : 성금비에 기록하여 영구보존


                      고액성금자(1백만원이상)에게는 종친회장의 감사장 수여(끝)


 


우리 모두가 십시일반의 한 마음으로 동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파일:


달메 2011-11-20 23:24:31 

2011년 10월 13일 부현 일가님의 글에 11월 2일에 댓글을 단 것은 이미 쓴 바 있지만 다음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1) 알림창에 있는 내용을 깊이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일가님이 쓴 내용과 알림창 내용을 연결시켜 보면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2) 묘지석 등에 관한 상식의 부족과 함께 오래된 무덤을 파서 무슨 연고를 찾자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102번 글을 정독하게 되면 답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언급하지 않은 한 가지는,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통일 신라시대에도 자체 연호가 있었으므로 망자의 사망년도가 있어야 함.”이라는 내용입니다.


부현 일가님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드립니다. 여기서 부현 일가님과 달메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사항이 아닙니다. 이건 부현 일가님이 쓰신 바와 같이 “솔직한 응대”도 아니며 “소모적 논쟁”에 불과합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일류를 나왔느냐, 아니면 삼류를 나왔느냐?
고졸이냐? 중졸이냐? 석박사 학위는 있느냐? 아이큐(IQ)는 얼마냐?
몇 살이냐? 고향이 어디냐? 이름이 뭐냐?
어디 사느냐? 어디 근무하느냐? 한 달 수입은 얼마냐? 재산은 얼마냐?
무슨 파냐? 몇 세손이냐? 회비는 내느냐? 부회장이냐? 제향은 잘 모시느냐?
시조의 함자는 알고 있느냐? 중시조의 아들은 몇이고, 딸은 몇이며, 配는 몇인가?
삼국사기는 몇 번을 읽었는가? 삼국유사는 봤는가? 고려사는 어떤 것을 봤는가?
위의 세 史書에 나오는 927년 公山 桐藪 전투가 무엇인가?
사마천이 쓴 사기를 봤는가? 22자의 한자 중 2자를 틀리게 인용하면 유식한가?
선조를 배은망덕한 자로 날조하는 자는 바로 悖倫兒가 아닌가?
도이장가는 언제 나온 향가이며, 이에 관련된 3인을 든다면 누구인가?

특히, 아래와 같은 글투는 다른 사람의 글도 깊이 읽지 않고, 남을 터무니없이 의심하는 것이므로 아주 좋지 않은 것입니다. 11월 2일 글에서 “남북에 살고 있는 약 70만 명의 수원백씨의 한 사람으로서 역시 수원백씨의 한 사람인 부현 일가님에게 보내는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1. 달메님은 수원백씨 29계파 중 어느 계파에 속하시는지요?
2..달메님은 묘역조성 사업의 추진위원이며 본건관련 파보지 않고 실행하는 것에 합의 하셨는지요?
3.나름대로의 납기 설정및 조속하게 추진하려는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요?”
“상기 질문에 솔직한 응대를 요청 드리며 더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가지 더 덧붙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국회(중앙) - 광역의회(시도) - 기초의회(시군구)가 있습니다.
국회에서 결정(의결)해서 대통령이 공포한 사항[법률]은 하급기관(관청)이나 시민, 군민, 구민을 기속하며, 하급기관(관청)이나 시민, 군민, 구민이 이 법률을 폐기하거나 수정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국회본회의에서 의결한 법률을 상임위원회나 상임위원회소위, 혹은 위원이 폐기, 수정할 수 없습니다.
기존 법률을 개정, 폐지하려면 이를 의결한 국회본회의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상식입니다.


질의응답이 흐트러졌습니다.
더 이상의 댓글은 없을 것입니다.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11월 11일 글에 대한 “솔직한 응대”도 없고, 하등 관련이 없는 쓸데없는 “소모적 논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현 일가님,
항상 즐거운 나날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방금 보고, 급히 쓴 글이니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이해바랍니다)

백부현 2011-11-17 10:00:05 
바로 아래글에 작성자가 빠져있어 다시 언급합니다. 저는 수원백씨 별좌공파 30세 백부현 이며, 현재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백부현 2011-11-09 16:23:05 
수신: 달메남, 자유계시판 102번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의 의견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신라고분조사 조차 어느 연대및 누구 묘인지 정확히 몰라 추정할뿐이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고분발굴 조사단이 사용하는 장비는 아마도 최첨단 장비를 활용했겠지요? 그럼 본건 관련 묘역 추진위원들이 활용해서 확인한 장비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장비의 신뢰성은 배제한다치고 조그만 뼈조각 같은것만 묻혀있는것 같다고 했습니다.
결론은 1. 국가에서 시행하는 고분조차 천년이 넘는 묘는 정확히 누구의 묘인지 모르는데 일개 문중에서 실시하는 묘역 찾기 사업은 더욱 확인이 어렵지 않을까요?
2. 누구의 묘인지 확인도 어려운데 단지 옛날부터 백장군 묘라고 구전되어온다고 하여 그묘를 중시조 묘로 결론짓자고하는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3. 다행이 그묘가 중시조가 아니라고 해도 백씨라는것만 확인되면 어치피 우리조상이니 백번 천번 절을해도 무방하겠지요.
4. 백씨 묘인지 무슨성을 가진 묘인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을 갖고 묘역으로 결정하여 실행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납득이 안갑니다. 아마도 무작위 100명 한테 설문조사 해도 90% 이상은 반대표가 나올겁니다.
따라서, 본건은 무리하게 성급히 추진할게 아니고 재고하여 묘를 파본후 그때가서 확인이 안되면 다른 대안를 찾는게 가장 합리적이고 우리 후손들에게 누가 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될것 같습니다.
백부현 2011-10-13 05:21:45 
본건 관련 추가로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역사적인 자료 참조및 백장군 묘로 알고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중시조 묘로서 지정을 할려면 더욱 확실한 검증을 해야하는것 아닐까요?
사건의 매듭을 위해서는 심증만 갖고는 안되고 물증과 알리바이가 정확히 일치해야만 하듯이 말입니다.
하물며 정식으로 매장된것 같지도 않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아뭏든 저는 본건관련 중시조 묘로 지정하는것에 반대하며 좀더 추가 조사와 정확한 검증을 거친후에 결정하는것이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백부현 2011-10-13 05:09:04 
안녕하십니까? 저는 의정부시 녹양동에 거주하고 있는 백부현(별좌공파 30세) 입니다.

본건관련 1년여전부터 얘기는 들어 진행되고 있는 사항을 어느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의 추진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시조 묘로 확인되었다고 하는데 무슨 근거로 확증을 갖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는 검증이라는 단계가 필요한데 무얼 어떻게 검증을 해서 백장군 묘라고 하는지요?

본인이 알기로는 x-ray 투시인지 뭔지 모르지만 어느정도 검증할려고 노력은 한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며 중시조 묘로서 확증을 하려면

1. 묘를 팠을때 유골이 있어야 하며

2. 묘를 파서 백씨라는 문구라도 있어야 하며(이름까지 있으면 더없이 좋음)

3. 통일 신라시대에도 자체 연호가 있었으므로 망자의 사망년도가 있어야 함.

상기 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중시조 묘로 결정하는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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